칼럼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13

작성일 2014-05-08 첨부파일


환자의 초대에 응하기 - 2

멀리 청주에서 한 가족이 왔습니다. 아버님의 눈을 고치기 위해서 왔다고 했습니다. 아버님 눈은 황반변성이었고, 이미 황반부에 흉터가 생겨서 잘 보이지 않는 눈이었습니다.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그저 아버님의 말씀을 들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환자도 많지 않았던 터라 별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한 참 그렇게 말씀하시고 나더니 가끔 여기에 와서 눈 검사를 받아야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보다 10살 쯤 위로 되어 보이는 아드님은 나가시면서 제게 고맙다고 했습니다. 저는 악수를 청했습니다.

여름이 되자 전화가 왔습니다. 그 환자의 아드님이었습니다. 안면도에 한 번 놀러오라고 했습니다. 직장이 안면도인데 안면도는 요즘 뜨고 있는 좋은 휴양지라고 했습니다. 한 번 밖에 만난 적이 없는데다가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런 전화를 받으니 약간 당황되었습니다. 의사가 환자와 사적으로 친해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잠시 고민도 되었지요. 그러나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와 함께 흘러나온 부드러운 목소리는 걱정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습니다. 마침 다음 주가 휴가인데 아이들과 차를 몰고 남해에 놀러가기로 했다고 하니까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들리라고 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한 남해 여행은 즐거웠습니다. 남해에서 돌아오기로 한 날 아침에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오후 안면도 입구 어디에서 기다리겠다는 연락이었습니다. 피곤한 아이들은 늦잠을 잤습니다. 고속도로를 타면 오후에는 넉넉히 도착할 테니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안면도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심상치 않은 장맛비였습니다. 얼마나 심하게 쏟아졌는지 와이퍼를 최고로 빨리 움직여도 시야는 흐렸습니다. 낮이었지만 어두웠습니다. 고속도로 위의 차들은 거북이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배고프거나 힘들다고 하면 휴게소에서 쉬었다가 가고, 배고프다고 하면 분식집에도 들렀습니다.

고속도로가 막혀서 서행을 하다가 대전을 조금 더 지나서 국도로 빠져나갔습니다. 지금 같으면 네비게이션만 따라서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그 당시는 그런 게 없었습니다. 아내는 지도책을 펴 놓고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길눈이 밝은 아내도 길을 찾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우리는 길을 여러 번 잘못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모든 것이 여행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느긋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날은 빨리 컴컴해졌고, 우리는 길을 여전히 찾지 못하자 초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밤 9시가 넘어서야 그분을 만났습니다. 그 동안 전화를 얼마나 많이 주고받았는지 모릅니다. 드디어 만나고 보니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배가 고프지요.” 하더니 자기 차를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그분의 차는 대형 트럭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로등도 없는 으슥한 길로 한참을 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좋지 않은 영화가 떠올라서 좀 불안했지만 기름도 별로 없던 터라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도착한 곳은 거대한 공사차량이 가득한 주유소였습니다. 중년의 한 남자가 나오자 “기름 좀 가득 넣어줘.” 하자 “네. 사장님.” 하더니 우리 차에 기름을 꽉 채워주었습니다. 기름을 채우는 아저씨에게 “저분 누구세요?” 했더니 “안면도 개발공사를 담당한 건설회사 사장님이세요.” 합니다. 그 분은 당연한 듯이 계산도 하지 않고 “그럼 내일 보자구.” 하며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드디어 안면도 바닷가의 집들이 보였습니다. 우리를 데리고 한 음식점에 들어갔습니다. 아까부터 문 닫지 말라고 했던 집이라고 했습니다. 그 동안 오면서 고생한 얘기를 했습니다. 그 분은 우리 얘기를 재미있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들어주었습니다.

맛있는 저녁식사를 사준 후 한 펜션을 소개시켜주었습니다. 주인아주머니와 친한 것 같았습니다. “여기가 꽃지해수욕장이니까 내일 아이들과 물놀이 하고, 한 밤 더 자고 올라가세요. 저는 내일 일이 있어서요.” 우리는 아쉬운 이별을 했습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꽃지해수욕장에서 아이들과 얼마나 재미있게 놀았는지 말도 못합니다. 바다가 갈라져서 섬까지 걸어가기도 했고, 바위에 붙어있는 수억 개의 작은 조개들 중 깨지지 않은 것들이 있는지 찾기도 했습니다. 그 때 아이들과 찍은 사진은 아직도 제 핸드폰에 있습니다.

한 달 후 그 분이 아버님과 같이 오셨습니다. 이제 누가 누군지 확실히 알게 되었지요. 반가운 마음에 시간을 더 냈습니다. 10년이 넘도록 지금도 6개월에 한 번씩 오십니다. 별로 해 드린 게 없는데 귀한 선물도 놓고 가십니다. 가끔 전화가 옵니다. 저는 아버님 안부를 묻습니다. 그러면 “안면도에 한 번 오세요.”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