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15

작성일 2014-05-28 첨부파일


이별과 마주할 때 - 2

그 환자가 제 방을 들어설 때 너무 예쁘신 분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망막이란 분야가 주로 노인성 질환이다 보니 어르신들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젊고 아름다운 분이 오시다니요. 제가 그 때까지 만난 환자 중에서 가장 예뻤던 분이라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전문적인 분야의 능력도 있었습니다. 모든 만남이 설레지만 아름답고 멋있는 선남선녀가 한 명만 자리를 같이 하게 되도 분위기는 ‘업’ 되기 마련입니다. 아름다움이 가지고 있는 힘인 셈입니다.

눈을 검사했더니 ‘망막앞막(epiretinal membrane)’이었습니다. 이 병은 원래 눈의 노화로 인한 대표적인 병입니다. 말 그대로 망막 위에 비닐같이 얇은 비정상적인 막이 붙어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막이 생겼다고 다 시력에 이상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망막 앞의 막이 점점 비정상적으로 오그라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만 오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그 밑에 붙어 있는 정상적인 망막도 같이 오그라들게 되겠지요. 마치 필름에 주름이 생기듯이 망막에 주름이 생깁니다. 그러면 사물이 휘어져 보이고, 시력도 떨어집니다. 치료방법은 망막앞막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망막의 주름이 펴지면서 완전히 정상은 아니지만 꽤 시력이 좋게 회복됩니다.

병을 설명한 후 수술을 하자고 했더니 남편과 상의 후 수술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수술이 걱정된다고 전신마취를 선택했고, 수술을 잘 끝났습니다. 퇴원 후 진료를 위해 그 환자가 밖에서 기다리는 모습만 보아도 왠지 즐거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수개월이 지나서 다시 망막앞막이 생기는 게 아니겠습니까? 다시 시력도 좀 떨어지고, 사물도 휘어져 보였습니다. 보통 망막앞막 수술 후 재발되는 확률이 5명 중에 한 명 정도인데 안타까웠습니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망막의 주름이 심해지기 때문에 다시 수술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 분은 다시 순순히 받겠다고 했지요.

수술이 잘되었고, 퇴원 후 1주일 후에 오셨습니다. 결과도 좋았고, 문제도 없어서 한 참 후로 예약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다음 예약시간에 오지 않았습니다. 오실 분인데 눈에 무슨 문제는 없는지 조금 걱정이 됐지만 ‘좋아져서 가까운 안과를 다니시나보군. 언제 한 번 오시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로 설렘이 있는 만남이나 즐거운 이벤트가 별로 없는 바쁜 일상에 묻혀버렸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1년 이상 지난 어느 날 남자 손님이 외래 진료가 끝날 때가지 저를 기다렸습니다. 그 분은 제게 몇 장의 사진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거기에는 전신이 부어있고, 얼굴이 괴물처럼 일그러진 중환자가 있었습니다.

“혹시 누군지 아시겠어요?” 하며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니까 자신은 누구의 남편이라고 소개를 하는데, 바로 그 예쁜 환자가 아니겠습니까? “아니!” 하며 저는 왜마디 소리를 질렀고, “왜...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1년 전에 이런 모습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우울증이 생겼는데 노무현대통령의 자살소식이 나오자 자신도 고층 병원입원실에서 뛰어내려서 세상을 떠났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환자가 이렇게 된 것은 제가 퇴원약으로 처방해 준 약의 부작용 때문일지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사실 1년 전에 좀 미묘한 문제가 있었지요. 녹내장처럼 안압이 높을 때 안약과 함께 추가적으로 사용하는 이뇨제 성분의 먹는 약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만드는 제약회사가 나라에서 약값을 원가보다도 낮게 책정해버리자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기존에 우리나라 병의원에서 보유하고 있던 이 약이 동이 나자 녹내장에 먹는 약을 쓸 수 없게 되었지요. 대체 약으로 유사한 약을 권해서 사용하고는 있지만 아주 드물게 어떤 사람에게서 이 약을 먹으면 온 몸의 부드러운 조직들이 부어오르는 스티븐존슨증후군이 생길 수 있습니다. 바로 이 환자에게 그 증후군이 생긴 것입니다. 물론 이 증후군이 생길 수 있는 다른 원인들도 많이 있지만 말입니다.

‘어. 그 약을 드신 지 한 주일 후에 오셨을 때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요...’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저는 꿀 먹은 벙어리로 눈물만 흘릴 뿐이었습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정말 죄송합니다. 못난 의사를 만나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그렇게 되면 안 되는 분이었는데...” 반복했습니다. 아직도 제 마음 한 구석은 그 분 때문에 아립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10년 전 그 분과 그 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떻게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