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24

작성일 2014-08-21 첨부파일



낚시 바늘에 찔린 눈 1

어렸을 때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진 후 왼쪽 무릎은 항상 불안했습니다. 그 ‘불안’이 매우 유명한 이름을 가졌다는 것을 안 것은 10년이 지난 본과 3학년 정형외과 수업시간이었습니다. 무릎 연골이 파열 되었을 때 나타나는 ‘locking'과 ‘giving way'라고 불리는 그 두 가지 불안감은 운동 능력을 최고로 발휘하려고 할 때마다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locking'은 무릎이 어중간히 펴진 상태에서 더 이상 무릎관절이 움직이지 않고 걸려버리는 증상인데 걸린 채로 땅을 딛게 되면 엄청난 고통에 한 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giving way'는 언덕을 내려올 때 왠지 무릎이 땅을 짚고 지탱하기 어려울 것 같은 느낌입니다. 달리기를 할 때마다 본능적으로 'locking'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했고, 걸렸을 경우에는 앉아서 양반다리를 한 후 다리를 꼬아 풀곤 했습니다. 도대체 왜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을까요?

강원도 산골에서 막 올라온 초등학생 눈에 서울 아이들은 왕자와 공주였습니다. 운동장 조회 때마다 앞에서 두 번째로 섰을 만큼 키가 작았고, 얼굴은 새까맸으며, 북한말 비슷한 강원도 사투리를 썼던 제 눈에 서울 아이들은 키도 컸고, 얼굴도 하얬으며, 말씨는 천사의 말처럼 부드러웠으니까요. 이 친구들은 자전거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자전거를 한 대 갖고 싶었지만 가난한 집안 사정을 걱정한 저는 조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친구에게 자전거를 한 번 타 보면 안 되겠냐고 졸라서 탔는데, 친구가 뒤를 잡아주긴 했지만 둘 다 어렸기 때문에 넘어지는 자전거를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무릎이 까지고 피가 났지만 자전거도 못타면서 자전거를 타다가 망가뜨렸다고 찡얼거리는 친구에게 미안해서 사과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후로 자전거를 어떻게든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아는 형에게 부탁해서 자전거를 배웠습니다. 배웠다고 해 봐야 불안한 초보였는데, 그 친구에게 나도 자전거를 탈 수 있다고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학교 자전거 보관소에서 몰래 형의 자전거를 꺼내서는 ‘딱 한 번만 타고는 다시 넣어야지’ 생각했지요. 자전거로 넘어지지 않았지만 간신히 균형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자전거는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자전거는 서서히 운동장으로 연결된 언덕으로 치닫기 시작했습니다. 온 몸은 긴장했고, 진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언덕에는 운동장에서 막 체육시간을 마치고 올라오는 6학년들이 꽉 차있었습니다. 브레이크를 잡았지만 뒷바퀴는 미끄러졌고, 자전거를 보지 못했던 한 선배를 들이받고 말았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선생님이 집을 찾아오셨던 3일째까지 부모님께 아무 얘기를 못했습니다. 호랑이 아버지도 이 일에 대해서 제게 더 이상 아무 얘기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중에 들은 말로는 부모님이 오랫동안 많지 않은 월급을 떼서 치료비를 대야 했고, 마음고생도 심했다고 했습니다.

이 일이 기억에서 사라질 즈음, 아버지가 “중고 자전거 한 대를 샀는데 가져올 수 있겠니?” 했습니다. 저는 버스로 30분 걸리는 그곳에서 중고 자전거를 끌고 타고 1시간도 넘게 걸려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 후로 저는 그 자전거를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웬만한 고장은 스스로 고쳐가며 그 자전거에 몸을 실었습니다.

한 번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 언덕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전거 초보 때 아픔이 있던 그 언덕이었습니다. 이제 자전거 고수였던 나는 입술을 깨물고, 힘껏 페달을 밟았습니다. 그 언덕을 나는 듯이 달려 내려갔으며, 잠시 후 자전거와 함께 하늘을 날았습니다.

잠시 후 자전거는 내 무릎 위를 덮쳤고, 자전거에 무릎이 낀 채 운동장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무릎이 너무 아파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도와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자전거가 저를 질질 끌며 데려왔습니다. 무릎은 엉덩이만큼 부었고, 침술사가 와서 물을 빼고는 약초를 덮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엎고 한 달 동안 학교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제 병이 무릎연골파열이라는 것을 진단한 것은 10년 후 바로 그 정형외과 수업시간이었고, 진단한 사람은 바로 저였습니다. 전문의를 딴 후 군의관 신체검사에서 무릎 MRI를 본 군의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다리로는 훈련이 어려울 거야. 파열된 연골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오라구. 무릎 연골제거 수술을 받게 되면 아마 군대가 면제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