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25

작성일 2014-08-28 첨부파일



낚시 바늘에 찔린 눈 2

어렸을 때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발생된 왼쪽 무릎 연골파열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정형외과 선배에게 MRI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본인의 스승이신 이병일 교수님을 찾아가서 관절경 수술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전신마취로 수술을 했고, 결과가 좋았습니다. 전문의 1년차 첫 한 달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 쉬었습니다. 과장님은 구미 순천향병원에 안과전문의가 필요하니 내려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한 살배기 딸과 아내를 데리고 타향에 내려왔습니다.

구미병원 원장님과 의사들은 저를 극진히 환영해주었습니다. 병원에서 20분 쯤 떨어진 곳에 방을 얻었습니다. 400병상의 구미병원은 서울병원과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직원들은 의사들을 최고로 대해 주었고, 의사들은 선후배나 친구처럼 따듯했습니다.

다양한 취미생활도 자랑이었습니다. 저는 일본어 회화클럽과 아마추어 무선클럽에 가입해서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전문의 1년차의 끓는 피를 다 식혀주지는 못했습니다. 가만히 보니 대구 북쪽 지방에서는 구미병원이 유일한 종합병원이었는데, 그동안 안과응급환자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안과응급환자를 받겠다고 하고 응급환자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명 정도 왔지만 안과 응급환자를 받는다는 소문이 돌자 환자는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밤중에도 콜을 받고 나가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 날도 밤중에 콜을 받았습니다. 응급실에는 20대의 형제가 있었습니다. 사연을 들어보니 주말에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낚시 바늘이 튀어서 동생의 눈을 찔렀다고 합니다.

낚시 바늘을 빼고 나서 약간의 통증이 있었지만 시력이 떨어지지 않아서 걱정하지 않고 있다가 집으로 가던 중 확인을 위해 응급실을 들렀다는 것입니다. 세극등현미경검사를 했더니 각막에 미세한 바늘자국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물이 새느냐 하는 점입니다. 플루레신 형광액을 점안하고 파란 불을 비춰보았는데, 찔린 부위에서 물이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냥 두면 눈이 쪼그라들고 시력도 떨어질 것이니 한 바늘 봉합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형제는 지금 시력이 괜찮으니 안약만 받아가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혹시라도 찔린 부위가 새면 동생의 눈은 위험해 질 것 같다며 오랫동안 설득을 했습니다. 그 날 밤중에 각막봉합술을 시행했고, 하루 입원하였습니다.

다음 날 환자를 보는데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수술한 눈이 희미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세극등현미경검사를 해 보니 봉합한 곳이 약간 부어있었고, 물이 새고 있었습니다. 현재 상태를 형제에게 설명을 하고 이미 봉합했던 부위 주위로 한 번 더 봉합하자고 했습니다. 수술 당일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다음 날 보니 또 새고 있었습니다. 낚시 바늘에 찔린 상처가 조금씩 녹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강한 항생제와 소염제를 썼었는데 아무래도 낚시 바늘에 찔린 부위에 염증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 날 오후 환자 보호자들이 몰려왔습니다. 멀쩡한 청년의 눈을 수술로 실명시켰다며 분위기는 과격해졌습니다. 더 이상 이성적인 판단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형과 어머니는 제 눈을 빼겠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마음과 같아서는 제 눈을 하나 내 주고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했습니다. 악몽과 같은 시간이 끝나기는 할까요?

마지막 발언권을 얻었습니다. 지금 실명을 한 상태는 아니며, 낚시 바늘에 찔린 부위만 아물면 다시 예전처럼 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봉합을 다시 해야 할 것 같은데 이미 저는 신뢰를 잃었으니 서울로 가자고 했습니다. 앰뷸런스를 대절해서 환자와 가족들을 태우고 서울로 달려가는 3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내가 응급실을 본다고 했을까? 왜 그날 밤 환자가 집에 가겠다는 것을 말리지 않았을까? 과연 내 선택이 틀린 걸까? 나만 이런 일을 겪는 것일까? 이 환자의 눈은 어떻게 될까?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가족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참으로 괴롭고 외로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