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27

작성일 2014-09-11 첨부파일



8번 공 전방출혈 (8 ball hyphema)

1년차 안과 전공의 때였습니다. 8살 여자아이가 또래 친구들과 장난감 총을 가지고 놀다가 장난감 총알인 비비탄에 눈을 맞았습니다. 아이는 아프다며 집에 가서 누워있었고, 아버지가 와서 응급실로 데려왔습니다. 펜 라이트를 비춰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각막(검은자)의 가장 아래부위에 빨간 선이 보입니다. 눈 속에 피가 고여서 만들어진 선이지요.

안과 응급질환들 중에서 겉으로 보기에는 가벼운 것 같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병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병입니다. 전방출혈이라고 하는 이 병은 말 그대로 전방에 출혈이 되었다는 뜻이며, 주로 외상에 의해서 생깁니다. 엄밀히 말하면 홍채의 혈관출혈이 더 정확한 진단명이겠지요.

우리 눈을 홍채(iris)를 중심으로 두 개의 방으로 구분해서 앞방과 뒷방으로 부릅니다. 전방의 ‘전(前)’자는 앞이란 뜻이므로 전방은 앞방을 뜻하지요. 뒷방에는 유리처럼 투명한 풀 같은 물, 즉 유리체가 차 있고, 앞방에는 맑은 물이 흐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눈 속에서는 1분에 1μm씩 끊임없이 맑은 물이 만들어집니다. 홍채 뒤에 있는 섬모체(ciliary body)라고 하는 언덕이 바로 옹달샘인 셈이지요. 여기서 만들어진 물은 동공(pupil)을 통해 전방으로 나와서 만들어진 속도만큼 눈 바깥으로 빠져나갑니다. 빠져나가는 길을 섬유주(trabecular meshwork)라고 하는데 흰자와 검은자가 만나는 부위에 해당하는 눈 안쪽 360도 구석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딸의 입원을 권유했습니다. “그 이유는 재출혈 때문이에요. 혈관 하나가 충격으로 터진 것 같은데, 지금은 멈춰있거든요. 그런데 충격이 생기면 다시 터질 수 있어요. 다시 터진 혈관은 저절로 잘 막히지 않아서 전방에 피가 꽉 찰 수 있어요.”

전방에 피가 꽉 차면 눈 속에 하수도 역할을 하는 섬유주가 피로 막히게 됩니다. 피가 꽉 찬 채로 조금 지나면 붉은 피가 마치 검은 8번 당구공처럼 검게 변하기 때문에 ‘8번 공’ 상태라고 기록합니다. 피가 꽉 차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눈 속에서 물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데 빠져나가지 못하니 눈의 압력이 올라갑니다. 안압이 올라가면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견딜 수 없을 뿐 아니라 눈 속의 시신경도 눌려서 손상을 입게 되고 심지어는 각막이 붉게 물들기도 합니다. 시력이 영구적으로 소실될 수도 있습니다.

설명을 했지만 아버지는 “지금 아이의 시력이 괜찮으니까 약만 받고 집으로 가겠습니다.” 했습니다. 겉으로 아무 다친 흔적도 없고, 시력까지 괜찮은데 의사들이 너무 위협적인 설명을 해서 입원까지 권한다는 생각에 표정과 말투도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어른들은 눈에 충격이 가지 않도록 조심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가만히 쉬도록 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입원을 거절하셔서 그렇게 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버지는 딸을 다시 데리고 왔습니다. 바로 8번 공 전방출혈 상태로 말이지요. 아이는 눈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빛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며 울었습니다. 교수님은 바로 수술준비를 시키고 전신마취로 수술을 했습니다. 수술 후 한 주일 동안 안압조절을 위해 입원을 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본인 때문이라며 말이 없었습니다. 2개월이 지나자 각막부종도 좋아지면서 시력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백내장이 생겨서 다시 전신마취로 백내장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서울병원으로 이동을 했고, 6개월 후에 다시 천안병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 아이를 보게 되었지요. 시신경의 손상으로 시력이 0.3 정도로 많이 저하된 상태였지만 아버지는 그것만도 다행이라며 고마워했습니다.

교수님은 아이들이 왜 이런 응급질환이 생길 수 있는지 조사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당시 아이들 전방출혈의 70%가 비비탄 때문에 생겼습니다. 이 연구결과를 발표한 후에 비비탄에 대한 위험성에 대한 보도가 나갔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비비탄 유사 제품을 이용한 장난감 총은 많이 이용되고 있는 놀이기구입니다. 중요한 점은 눈의 안전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눈 손상의 위험성이 높은 아이들에게는 반드시 고글을 착용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도록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