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28

작성일 2014-09-18 첨부파일


아내의 눈을 멀게 하다.

부부의 인연은 하늘에서 맺어준 것이라고 믿고 있는 저에게 응급실로 온 이 환자의 사연은 기구했습니다. 심한 외상으로 한쪽 눈의 시력을 갑자기 잃었다고 말하는 45세 여자 환자의 눈은 겉으로 보기에도 심각했습니다. 부어있는 눈꺼풀 안쪽의 흰 결막이 피로 붉게 변하기도 했지만 홍채의 갈색 조직이 바깥으로 일부 튀어나와 있어서 누가 봐도 ‘눈이 터졌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반대편 눈이 실명 상태라는 것이었고, 더 놀라운 사실은 두 눈을 이렇게 만든 가해자가 남편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처음 응급실로 들어올 때 남편과 같이 왔는데, 키가 큰 남편은 선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말투도 조용했으며, 아내의 손짓과 표정과 몸짓을 살펴가며 극진히 간호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남편이 가해자라니... 입을 다물고 있던 아내가 어렵게 얘기를 하고나자 감겨진 눈 사이는 피눈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가정폭력임을 알게 된 직원은 가까운 경찰서로 신고를 했습니다.

먼저 딱딱한 눈 보호대를 착용시킨 후 혹시 이물질이 들어가지는 않았는지 안와 CT를 찍었습니다. 다행히 이물질은 없었고, 빨리 응급수술을 들어갔습니다. 매우 넓게 눈알을 싸는 껍질(공막)이 얇아졌으며, 그 중 한 군데로 홍채가 삐져나와 있었습니다.

바깥에 노출된 지저분한 홍채를 절개한 후 나머지는 다시 눈에 넣어주었고, 눈 속에 피를 제거했으며, 백내장 수술을 같이 했습니다. 다행히 눈 속에 필름 역할을 하고 있는 망막은 건강했습니다. 얇아진 껍질을 어떻게 보강하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다행히 기증받은 안구가 있어서 그 안구로부터 흰 껍질 부위를 오려낸 후 오린 것으로 눈 전체를 허리띠처럼 둘러서 봉합을 했습니다. 얇아진 부위의 눈 안쪽은 물을 만드는 샘물이 있는 곳이라 가장 큰 걱정은 눈 속에서 물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물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눈이 오그라들고 맙니다.

물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그런지 안압이 매우 낮았습니다. 한 주일이 지나도 시력이 회복될 기미는 없었습니다. 그 동안 남편은 경찰의 조사를 받았습니다. 남편은 아내로부터 격리되어야 마땅하나 당장 아내를 도와줄 사람을 구할 수 없었기에 남편은 아내 옆에 있게 했습니다. 남편은 죄인처럼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요. 한편으로 측은했지만 한편으로 아내에게 폭력을 휘둘러서 실명을 시킨 행위는 거의 살인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별로 마음을 줄 수 없었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회복하게 되면 벌을 달게 받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되면 아내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또 구해야 합니다.

다행히 2주가 지나자 안압이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으며, 사물도 희미하게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따라 퇴원을 했습니다. 그 후로 3개월 동안 눈의 기능이 돌아올 지 명확하지 않아서 노심초사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극진한(?) 간호 때문이었는지 6개월 쯤 지나자 시력이 조금 돌아왔으며, 두 분의 표정도 좋아졌습니다. 남편의 거취는 아내의 결정에 따르기로 되어있었는데 두 분이 같이 계속 같이 오시는 것을 보면 아내가 용서를 해 준 것 같았습니다.

아내의 용서에 대해 가까이서 지켜본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남편의 폭력을 용서해 준 것을 보면 아내의 마음이 더 넓은가 봐요.” “부부 사이의 일은 아무도 모르지만 아내가 폭력을 유발했을지 모르잖아요. 따라서 아내도 일부 책임이 있어요.” “남편의 폭력은 한 사람을 실명으로 몰고 갈 뻔 했잖아요. 내 딸을 그렇게 만들었다면 내가 용서하지 못할 거에요.” “예전 폭력으로 한 눈을 잃었는데, 왜 같이 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폭력은 도박과 같아서 지금은 당장 괜찮을지 몰라도 또 그럴 수 있어요. 당장 둘을 떼어놔야 해요.”

저는 남편이 있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내의 눈은 기적적으로 견디고 있는 겁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든 일이 생긴다면 어떤 합병증으로 힘들게 될지 몰라요. 그러니 아내에게 잘 해 주세요.” 꼭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남편은 제 앞에서 그러겠노라고, 도박을 끊기 위해 피의 맹세를 한 것처럼, 굳게 다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