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성진 교수의 눈 이야기 -130

작성일 2014-10-06 첨부파일


눈이 터진 것 같아요. 1

1990년대의 천안은 이제 막 기지개를 펴려는 새끼 표범과 같았습니다. 충남 서북부 지역에서 천안은 아직 개발되지는 않은 도시였지만 천안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컸습니다. 그 이유는 서산, 당진, 예산, 도고, 온양을 거쳐 천안에 이르는 길이 하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차들이 새벽부터 밤늦도록 2차선 국도를 달리고 달렸습니다. 편도 한 차선의 구불구불한 길이었기 때문에 느린 차들이 길을 막으면 그것을 추월하기 위해 무리한 운전을 했습니다. 교통사고가 많았던 이유입니다.

천안 순천향대학병원은 당시 이 일대에 유일한 대학병원이었습니다. 매일 매일 사고를 당한 환자들이 몰려왔습니다. 대형 버스사고라도 날 때면 응급실이 모자라서 병원 앞마당까지 자리를 펴야 했습니다. 얼굴부상은 눈 손상을 동반했습니다. 안과 입원환자를 기록하는 칠판의 20개의 칸이 모자라서 넘칠 때가 많았는데 대개는 눈 외상 환자였고, 그 중에는 안구파열 환자도 매번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년차 말이 되자 눈 외상에 대해서는 나름 도사가 되었습니다. 도사가 되었다는 건 다른 것이 아니라 안구가 파열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를 구분하는 법에 대해서입니다. 안구가 파열되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빨리 터진 부위를 봉합하지 않으면 감염의 위험도 있고, 눈 속의 신경이나 혈관 조직들이 더 큰 손상을 입어서 회복의 가능성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눈이 터졌는지 구분하는 게 쉬울 것 같지만 의외로 어렵습니다.

안구 주위에 부드럽고 섬유조직들과 근육들이 몇 겹으로 쌓여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잘 터지는 부위는 각막(검은자위)과 공막(흰자위)의 경계면에서 6mm 정도 떨어진 곳인데, 바로 이곳이 눈을 움직이는 근육들이 붙어있는 가장 얇은 곳입니다. 이 곳이 길게 찢어진 경우라도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다른 간접적인 소견들을 종합해 봐야 합니다. 시력이 잘 나오지 않거나 눈 속에 출혈이 보이거나 빛 반사가 없거나 압력이 낮거나 눈 속에 있는 갈색 홍채조직이 흰 결막 바깥으로 보이거나 눈 움직임이 명쾌하지 않는 지 말입니다. 그 중에 갈색 홍채조직이 흰 결막 바깥으로 보인다면 진단은 쉬운 떡먹기가 됩니다.

그 날은 화창한 아침이었습니다. 입원 환자들 회진을 느긋하게 시행한 후 응급실을 들렸지요. 인턴 선생이 웃음 띤 얼굴로 반갑게 인사를 하며 이렇게 얘기합니다. “선생님, 외상을 입은 안과 환자가 지금 막 오셨는데 한 번 봐 주실 수 있어요?” 인턴 선생이 환자의 병력 조사와 검사들이 잘 안 된 상태에서 연락을 하면 핀잔을 들을 각오를 해야 하지만 안과는 환자가 왔다고만 연락을 하면 내려가겠다고 했던 터라 제가 반가웠나 봅니다.

서해바다로 놀러가던 중에 가벼운 차량 간의 충돌이 있었고, 뒷좌석에 타고 있다가 앞좌석 등받이를 안면부로 들이 받았던 38세 아주머니였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듯 서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외상 후 갑자기 잘 안보이고, 두 개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X-ray 검사에서는 안와골절이 없었습니다. 세극등현미경으로 눈을 보았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눈의 흰 결막 위로 갈색 홍채조직이 보이는 게 아니겠습니까? 미세한 안구파열이 있다는 증거이며, 고민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의미입니다.

빨리 4년차 전공의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당시 4년차는 보통 4년차가 아니었습니다. 전년도까지 안과는 3년차 전공의 제도였다가 그해부터 4년차 제도로 바뀌었기 때문에 거의 준 스태프 수준이었습니다. 당연히 응급수술은 4년차의 몫이었지요. 그래도 휴일에 서울에서 쉬고 있는 높은 4년차를 천안까지 내려오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안구파열이 아니면 하루 입원시켰다가 다음 날 보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명확히 안구파열이니 아침부터 안심하고 전화를 돌렸습니다.